꽤 오랜만에 내게 사진기를 들 기회를 준 하루였다.
"무등경기장" - 어려서부터 이 장소는 TV에서 자주 보았고, 많은 유명한 경기들이 펼쳐졌던 곳이다. 하지만 광주에 와서 운전중에 우연히 본 무등경기장은 생각보다 많이 아담해서 그간 찾지 않고 TV로만 야구를 보곤 하였다.
다행히 제대 전에 무등경기장에 갈 기회가 생긴 오늘. 부산 출장 후에 광주를 찾은 효희와 당직 근무를 마친 나는 모처럼의 주말을 야구와 함께 산뜻하게 보낼 수 있었다. ^^
경기는 내 마음대로 풀려주진 않았다. 김광수 vs. 서재응의 선발 구도는 그럭저럭 해볼만했지만, 3, 4, 5번이 전부 빠진 타선에 최근 LG 선수들이 승부욕을 상실하였기 때문. 할 수 있는 플레이는 하고 자기 기록은 관리하지만 팀 승리는 관심 밖인 선수들의 결합체였다, 오늘의 LG는. 결론적으로 4:4 동점인 9회 초, 이대형이 무사에 끈질긴 승부 후 좌익수 앞 안타를 치고 진루해있던 그 순간. 3번타자 박병호(!)의 0-2 상황 유격수 앞 땅볼이 내게 큰 어이없음을 안겨주고야 말았다. "김재박 야구의 3년"이 이런 식으로 끝나는건가? 라는 허무함이 내 몸을 싸늘하게 감싸와 한동안 말을 할 수 없었다. 14안타를 치고 선발투수가 비교적 호투한 팀이 4안타로 4점 득점 후 6이닝째 침묵이던 팀에게 기가 꺾이는 모양새를 보면서 어느 개인, 조직이든 자신감과 의지는 참 중요하구나 하는 점을 다시 느끼기도 했다. 어떻든 그렇게 되자 9회 초 LG 김재박 감독은 노진용을 내보내 경기를 속히(?) 마무리짓고자했고, 이미 선수들의 행동에는 새로운 기대가 없었다.
최경환은 LG출신으로 두산에서 빛을 발한 현재는 KIA 소속의 백업 선수이다. 자주 LG 팬들끼리 이야기하지만, 두산 출신의 선수들은 LG와의 경기에서 묘한 오오라를 갖고 임한다. 홍성흔, 안경현, 그리고 최경환 또한 그렇다. 많은 LG팬들이 최경환의 대타 순간 경기의 끝을 예감했으리라 생각한다. 김상현 이전에 최경환 또한...거기에 더해, 2000년대의 두산은 엘지에게 어떤 존재였던가?
주차가 불안해 황급히 나온 우린 상무지구의 Seven Monkeys로 향했다. 점심은 든든히 먹었지만, 어느새 배가 조금 허기질 수도 있는 시간. 샌드위치와 커피 한잔에 우리의 common ground 중 하나인 사진 잡지를 꺼내 읽으며 주말 저녁의 즐거움이 이어졌다. 아, 만일 나의 광주 생활이 이러했었다면 난 광주를 얼마나 사랑하게 되었을까? - 효희의 편안한 표정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지나갔다.
사진잡지 이야기 하나. 이 잡지는 (이름을 까먹음) 한권에 10,000원인데 꽤나 괜찮았다. 월간 사진이 원로한 분위기, BW 등이 너무 classical 하거나 avant-garde하다면 이 잡지는 moderate, popular version이라고나 할까. 사진에 대해 별다른 노력 없이 updated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좋은 잡지 같았다. 내용중에 구본창이 중앙일보의 새 편집 디자인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꽤나 새로웠고, 덕택에 예전에 박교수님이 구본창과의 만남에 대하여 이야기하던 일이 떠올랐다. 사진은 언제나 쉽게 흥분의 주제가 된다는 사실이 그분과 나의 공통점 중 하나였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 돌아갔을 때엔 아마 그렇진 않을 것 같지만... // 그리고 오늘 우리가 갔던 무등경기장에서 1960년대에 어떤 체육대회가 열렸고, 그날 '압사 사고' 때문에 열다섯명인지가 사망했는데, 그 소식이 당시 대통령의 무슨 행사 소식때문에 탑에 나가지 못하고 토막으로 처리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세상은 적절히 변화하고있나? 주가의 하락과 상승 곡선처럼 때론 더 떨어지면 안될 것 같은 곳까지 내려가지만, 결국은 제 갈 길을 찾으리라는 생각은 든다. 과거가 저랬다면, 과거의 사진이란 지금보다 더 높고 숭고한 가치를 지녔었겠지.
그렇게 지나간 즐거운 밤...
효희를 바래다주고 돌아와, 운동복을 입고 기지 메인 도로를 한바퀴 뛰었다. 마음이 조용하고도 차분히 정리되기를 기대하면서, 그리고 외롭지 않은 주말에 감사하면서 말이다.
"하루의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주말을 가득 채울만큼 따뜻하고 풍요로운 일요일." - 그런 일요일을 준 효희와 광주에 감사한다.



![Enrico Pieranunzi - Racconti Mediterranei [Digipak]](http://image.aladdin.co.kr/coveretc/music/coveroff/4795014841_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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